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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3 : 직딩/박진심의 極韓여행

3박 4일 인천~부산 633km 4대강 국토종주 후기 (2일차)

 

 

 

배고픈 도로 위 홍콩 아재들

 

 

둘째 날 아침 숙소 밖에서는 밤에는 보지 못했던 한적한 여주와 한강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한강을 따라 강천보, 비내섬, 충주 탄금대를 향해 내려간다. 한강은 본래 한가람에서 비롯된 말로 크다, 넓다, 길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실로 한가람의 의미를 온몸으로 보고 느끼는 하루다.

 

                 

 

첫째 날과는 달리 도로 위에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간혹 시골 마을 사람들이나 근처 군부대의 훈련 중인 장병들, 헬기들이 지나다닐 뿐이다. 달리던 중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한 나는 고픈 배를 채우려 근처 마을의 슈퍼마켓에 들렀다. 다행히 컵라면을 조리해 먹을 수 있어서 즉석 밥과 소시지를 사먹기로 했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더니 어제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식사 후 계속 도로를 달렸다. 밥은 부실했지만, 어제 잘 쉰 탓인지 컨디션은 좋았다. 바퀴가 굴러감에 따라 다가오는 강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피톤치드가 나의 정신과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가끔 입 속으로 날벌레들이 들어왔지만, 이 또한 더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속도를 좀 더 내서 페달을 밟았다. 저기 멀리 국토 종주 길을 따라 주행하는 한 무리 아재들을 따라잡게 되었고 반가운 마음에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국토종주 중이신가요?

 

Hello! We are foreigners.

 

! 你们是中?

(안녕하세요! 중국인이세요?)

 

나는 억양을 통해 이분들이 중국 사람임을 느꼈고 중국어로 중국인 맞는지 물었다. 한국어에서 영어, 영어에서 중국어로 언어가 바뀌는 순간이다. 지난 나의 10년 동안의 중국 유학 생활을 통해 갈고 닦은 중국어 실력이 빛을 발했다. 그들은 말이 통함을 알고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쉴 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好!小子,我香港

(안녕 젊은이, 우린 홍콩에서 왔어)

 

向釜山骑车们饿 附近有有餐厅啊?

(우리는 부산을 향해 가고 있어, 배고픈데, 주변에 식당이 있는지 아니?)

 

到了釜山我坐火回首尔,火可以放自行车吗

(부산에 도착해서 기차타고 서울에 돌아 올 건데, 기차에 자전거를 놓을 수 있을까?)

 

                 

 

집을 떠난 나도 고생하는 중이었지만, 나라를 떠나 여행 중인 배고픈 홍콩의 다섯 아재는 마음고생 몸 고생이 더 심했나 보다. 국토 종주는 나 역시 초행이라 낯설지만, 아는 만큼 성심껏 질문들에 하나둘 대답해주었다. 우린 함께 만난 기념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고 그분들에게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를 달라며 중국 메신저 연락처를 알려 드렸다. 홍콩 아재들은 어제 이른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고 공항부터 출발해 부산까지 국토 종주 중이라고 한다. 함께 부산까지 달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주어진 시간과 일정이 달라 아쉬움은 뒤로하고 그들을 추월했다. 꼭 연락 달라고 하시던 아재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만 같다.

 

 

문경새재, 백두대간 이화령 자전거길

 

 

충주 탄금대를 지나 도착한 새재 자전거 길은 한강 자전거 길과 낙동강 자전거 길을 연결하는 100km의 내륙 구간이다. 이 구간은 국토 종주 여행자들에게 악명 높기로 유명한데, 문경새재에서 여러 고갯길과 함께 소조령(374m)도 넘어야 하고 꼬박 5km에 달하는 경사도 심한 이화령고개(548m)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마련된 쉼터에서 쉬며 웅장한 산세의 조망을 감상한다면, 이화령 정상에 서기까지의 시간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화령 고갯마루에는 조망이 일품인 휴게소가 있었다. 휴게소를 지나 산자락을 연결하는 생태 터널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내린 빗물은 한강으로, 동쪽으로 내린 빗물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고 한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 문경 읍내로 이어지는 내리막길도 꼬박 5km. 힘들게 올라왔던 길을 쉽게 내려오니 허망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반대로 보상받는 기분도 든다. 이화령 고개를 통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새재 자전거 길에서 만난 이화령 고갯길은 가장 고되지만 가장 많은 성취감을 준 구간이었다.

 

 

                                              

 

 

문경 읍내를 지나니 점점 어두워졌다. 야간 라이트를 켜고 이번에는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을 따라 달렸다. 하늘 위에는 달빛과 별빛이, 도로에는 나의 자전거 불빛밖에 없다. 경북 팔경의 제1경인 진남교반을 통과하면 산세는 점점 낮아지고 평야는 차츰 넓어진다. 점촌 시내를 벗어나 마침내 영강과 낙동강 본류의 합류 지점, 잠시 쉬어갈 겸 스마트폰 지도를 확인한다. 오늘 숙박 예정지인 상주보 민박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 또다시 어둠 속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상주보 자전거 민박에서 만난 해병대 장병

 

 

국토 종주의 중간 지점인 상주보에는 라이딩족들 사이에서 유명한 민박집이 하나 있다. 자전거 여행을 좋아하는 사장님이 상주보에 가장 먼저 라이딩족들을 위한 민박집을 차렸다고 하는데, 여기엔 여행자들을 위한 뷔페와 자전거 보관소 그리고 사장님만의 종주길 여행 TIP이 마련되어 있다. 예전부터 이 민박집에 하룻밤 묵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둠 속 민박집까지 20~30km는 더 가야 하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무릎은 새재와 이화령 고갯길을 넘느라 무리했는지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민박까지 인증센터 하나를 남기고 있는 시점, 갑자기 뒤에서 1톤 트럭이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빠앙하고 경적을 울렸다. 나는 조심하라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속도를 늦췄는데 그 트럭은 급기야 내 옆에서 정차했다. 어두운 밤인지라 자전거를 세운 뒤 긴장한 마음으로 경계하며 천천히 트럭을 살폈다. 알고 보니 그 트럭엔 커다랗게 상주보 민박이라는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주인아저씨의 구수한 말투가 들렸다.

 

 

안녕하세여? 오늘 밤 어디에서 주무실 거에여?

 

반가운 마음에 안 그래도 상주보 민박까지 가는 길이라고 말씀드렸다.

 

마아니 늦었는데 차타고 가여~ 민박집까지 하안참 걸려여

 

그러자 사장님은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픽업해 줄 테니 차에 타라며 거듭 권유한다. 무릎은 아프고 힘은 들지만, 오롯이 내 힘만으로 국토 종주를 하고 싶어 처음엔 사양했다. 하지만 정 마음이 불편하면 내일 아침 픽업했던 장소까지 다시 차로 돌아 가준다는 사장님의 말에 지친대로 지친 나는 그만 설득당해 버렸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는데 차에는 붉은색 해병대티를 입고 상륙전 돌격 머리를 한, 두 명의 청년이 먼저 앉아있었다. 자세히 보니 충주에서 잠깐 길을 잃었을 때 마주쳤던 장병들이었다. 마주친 장소가 국토 종주 자전거 길이 아니었기에 잊고 있었는데 이들도 나처럼 국토 종주 중이었다고 한다. 나도 불과 얼마 전에는 해군 장교였고 지금은 전역했으니 형처럼 편하게 대해 달라고 말했다. 해병들도 동생처럼 편하게 대해 달라고 한다. 해병대 동생들은 전역을 앞둔 마지막 휴가를 의미 있게 보내려 국토 종주를 시작했단다. 기특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주보 민박에서 함께 도착한 우리 일행은 식당에서 커다란 쟁반에 사장님의 어머니가 차려놓은 뷔페식 반찬을 한가득 담아 식사를 했다. 집을 나온 후 먹는 처음으로 먹은 제대로 된 한 끼였다. 식당의 하얀 벽에는 이곳을 방문한 여러 국토 종주자의 사인과 소감들이 규칙 없이 적혀있었다. 그중에서 크게 적혀있는 굵은 글자 한마디가 뇌리에 남았다.

 

박진고개와 영아지고개에 무릎을 묻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