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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3 : 직딩/박진심의 極韓여행

3박 4일 인천~부산 633km 4대강 국토종주 후기 (1일차)

 

  본글은 신세계그룹 제1회 백일장 응모를 위해 작성된 수필입니다. 이 점 참고하시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상은 여행의 끝일까? 

 

한여름 밤의 꿈같던 대졸 신입사원 입문교육이 끝났다. 신입사원과 선배님들이 모여 수료식이 진행되었고, 신입사원들이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명되었다. 일순간 모두의 이목이 나에게로 집중된다.

 

박선호 신입사원은 수료식 후 사흘간 자유시간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예전부터 꼭 이루고 싶었던 꿈이 하나 있었기에 대답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일상이란 굴레를 벋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자전거 국토 종주에 도전하겠습니다.

 

 

 

무뚝뚝한 인상의 자전거 샵 사장님

 

 

수료식이 끝난 후 그날 밤 나는 부천에 있는 자전거 샵으로 즉시 차를 몰고 갔다. 신중히 고르고 골라 예약금까지 걸어놨던 사이클 자전거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전 해군 중위로 전역하며 받은 퇴직금으로 장만하려 했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자전거다. 자전거의 프레임 바디는 검은색 바탕에 열정을 나타내는 빨간색으로 포인트가 되어있다. 이 자전건 앞으로 34일간 나와 함께 633km를 달리며 인천에서 부산까지 거친 신고식을 치러야 할 것이다. 무뚝뚝한 인상의 사장님은 국토 종주를 앞둔 나에게 자전거의 안장을 조절해 주며 물었다.

 

자전거 장거리 라이딩을 처음이죠?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려면 힘들더라도 무릎 라인이 페달 밖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요

 

그리고는 잘 다녀오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수통, 야간 라이트 등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서비스로 줬다. 무뚝뚝한 인상과 달리 친절한 사장님,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가자, 가자, 가자! 바퀴는 굴러가고 강산은 다가온다.

 

출발 당일 국토 종주를 앞두고 들뜬 마음에 충분한 숙면을 하지 못했다. 자전거를 가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으로 국토종주 후기를 읽으며 늦게 잠든 탓도 있다. 후기를 읽어보니 짐은 최대한 적게 가져가야 좋다는 조언이 많았고, 작은 배낭에는 갈아입을 단벌의 속옷, 핸드폰, 보조배터리, 지갑만을 넣었다. 나머지 필요한 물건은 현지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국토 종주의 출발점인 인천 아라 서해갑문 인증센터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갔다. 그곳에서 국토 종주 인증수첩을 샀고, 빨간색 공중전화부스를 재활용한 친환경 인증센터에 들어가 첫 번째 도장을 쾅쾅하고 찍었다. 이제는 국토 종주라는 앞으로 다가올 길고 힘들 여정이 실감 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전거의 첫 바퀴를 굴려야할 차례, 출발점 옆 비석으로 만든 조형물에서 인상 깊은 한 가지 글귀를 발견했다.

 

 

 

가자, 가자, 가자! 바퀴는 굴러가고 강산은 다가온다.

 

이 글귀를 읽으니 페달를 밟으며 겪을 고생보단, 앞으로 다가올 아름다운 풍경이 기대가 되어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출발선에는 나와 같은 채비를 한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다른 아저씨도 계셨다. 우린 아저씨는 각자 홀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기에 서로를 의식했고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분은 모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셨는데 방학이 되면 국토 종주를 시작할 것이며 예행연습차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는 종주를 시작하는 나의 젊음이 부럽다 말씀하신다. 자전거 바퀴에는 어느 중년의 부러운 마음도 담겨있다.

 

첫날은 인천에서 서울까지 21km, 서울에서 여주까지 100km 이상을 달려야 했다. 잘 포장된 아라 자전거 길을 따라 거슬러 오르니 금방 서울이다. 주변에는 국회의사당, 63빌딩 등 익숙한 건물이 보인다. 한강 여의도 공원에서는 편의점에 들러 햄버거, 김밥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평소에는 살찔까 염려되어 잘 먹지 않던 초코바도 네 개나 구매해 가방에 넣어두었다. 식당이 문을 닫은 야간이나 피곤에 지쳐 당이 떨어졌을 때 먹으면 좋을 것이다.

 

여의도를 벋어나 조금 더 페달을 밟으니 한강 건너편 이마트 본사가 보였다.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천천히 바라보았다. 이마트는 국토 종주가 끝나면 집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가게 될 장소이자 내가 선택한 직장이다. 이번 국토 종주를 하며 직장생활이란 출발점에 서 있는 나는 과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서울을 벗어날 쯤 하늘엔 붉은 어둠이 찾아왔다. 수도권의 밝은 조명은 자전거 야간조명을 켤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도중에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하남도 지나쳤다. 불과 며칠 전에 신입사원 동기들과 함께 견학했던 곳이다. 지금은 나 홀로 그 옆을 지나며 자전거를 타고 있노라니 새삼 외로운 기분도 든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바퀴가 굴러가야 강산이 다가올 것이다. 가자! 가자! 가자!

 

 

 

 

여주 산정파크 모텔

 

 

자전거를 탄 지 10시간쯤 지났을까? 자전거의 바퀴가 굴러가면 굴러갈수록 나는 서울에서 멀어졌고, 밤은 더욱 깊어졌으며 아직 장거리 주행에 적응하지 못한 엉덩이는 아파지기 시작했다. 엉덩이가 아픈 만큼 스마트폰 지도를 통해 숙소까지 남은 거리가 얼마인지 확인하는 횟수도 잦아진다. 하지만 아직 2시간을 더 달려야 하는 상황. 가로등 밑에서 휴식을 취하며 편의점에서 사둔 초코바를 꺼내 먹는 것으로 지친 엉덩이를 달래주었다.

 

 

밤이 더 어두워지니 내 시선은 자연스레 자전거에 달아둔 GPS 장치로 집중된다. 이 장치에는 내가 얼마나 달렸는지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 간단하게 표시되어있는데, 한번, 두 번, 세 번,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마다 계기판에 숫자가 조금씩 올라간다. 마치 러닝머신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느낌이다. 주행속도를 시속 20km 이하로 내려가지 않게 하려고 나를 조금씩 다그친다.

 

10km, 5km, 3km만 더! ! !

 

목표했던 숙소까지 도착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기를 반복, 12시간 165km를 달린 끝에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여주의 첫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80년대나 지어졌을 법한 산정파크란 이름의 모텔이다. 건물의 외벽은 구식목욕탕에서 볼 수 있는 옥빛 타일로 덮여있었다. 근처 주황색 가로등 불빛은 이 모텔의 외관을 한층 구식으로 만든다. 홍콩영화 중경삼림의 배경인 중경 맨션의 이국적 느낌도 묻어난다. 방을 잡았다. 외관이 고급스럽진 않았지만, 깔끔하고 아담한 방이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와 내 자전거를 반겨주었다.

 

 

 3월의 새벽 밤공기는 아직 쌀쌀했기에 방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따듯한 물로 나의 몸을 적셨다. 샤워하며 다음 날 주행을 위해 땀에 젖은 속옷과 티셔츠를 빨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젖은 옷을 걸어두고 구식 전기장판을 켠 뒤 이불 속에 몸을 맡기니 온몸이 아이스크림이 된 듯 녹아버렸다. 따스한 온기는 TV를 켠 채 잠에 곯아떨어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평소 절약 정신이 투철한 나는 방을 잡을 때 주인장 아저씨와의 협상 끝에 아침 일찍 떠날 거라는 이유를 들먹이며 5,000원을 깎아 35,000원을 드렸었다. 겉모습과는 달리 깔끔하고 안락한 방에서 푹 쉬고 나니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