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의 시조 주원장(朱元璋)이 묻힌 명효릉(明孝陵) 남경의 부자묘(夫子庙)를 여행하다. (강소성 2-5)▲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듯한 착각을 주는 명효릉(明孝陵)의 명루(明楼)

명나라의 시조 주원장(朱元璋)이 묻힌 명효릉(明孝陵) 남경의 부자묘(夫子庙)를 여행하다. (강소성 2-5)

[부제: 함향주점의 취두부 맛은 어떨까?]

1. 명효릉(明孝陵)

명나라의 시조 주원장(朱元璋)이 묻힌 명효릉(明孝陵) 남경의 부자묘(夫子庙)를 여행하다. (강소성 2-5)▲ 명효릉(明孝陵) 풍경구로 들어가는 입구.

명효릉(明孝陵)은 남경시 자금산(紫金山,쯔진산) 남쪽 봉우리에 있다.

원래는 이곳은 영곡사(灵谷寺)가 있던 곳인데 명나라의 시조(始祖) 주원장(朱元璋)은

영곡사를 동쪽으로 이전시키고 이곳에다 자신이 사후의 궁전을 지은 것이다.

금수교(金水桥)▲ 금수교(金水桥) 금수교는 오룡교(五龙桥)라고도 부른다. 다리는 돌로된 아치형 모양으로 5채가 나란히 노여져 있어 200m 앞의 5개의 릉궁문과 대응하고 있다. 현재 다리 기초부분과 받침돌만이 명나라 시대의 유물로 남아있다.

보통 명나라 황제의 무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가 북경의 명13릉(明十三陵)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은 명나라의 개국 황제 주원장, 그리고 그의 부인 마씨(马氏)의 사후궁전이 있는 특별한 곳이다.

명효릉은 중국 명릉(明陵)의 원조인 만큼 이곳이 풍기는 웅장함은 사뭇 남다르다. 

명대(明代)를 대표하는 명효릉의 건축예술, 석각(石刻)예술의 성과는 

그 후 명나라와 청나라를 걸친 500년의 시간 동안 황제의 영궁(灵宫)을 건설하는데에 있어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 명효릉(明孝陵)의 지도. 빨간 줄을 따라서 직선으로 들어갔다 나온 후 신도(神道)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명효릉(明孝陵)의 지도. 빨간 줄을 따라서 직선으로 들어갔다 나온 후 신도(神道)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 문무방문(文武方门)▲ 문무방문(文武方门) 문무방문은 명효릉의 첫 번째 문이다. 그러나 홰손되어 1998년에 중산릉 관리국에서 복원했다.

역사가 흐르고 수도가 바뀌면서 북경(北京), 호북(湖北), 요녕(辽宁), 하북(河北)에 명나라 그리고 청나라 황제의 무덤이 건설 되었는데,

모두 남경에 건축되어진 명효릉(明孝陵)의 규모와 형식에 따라 건설되었다고 한다.

명효릉은 홍무(洪武)14년(1381년)에 건설되기 시작했고 이듬 해 황후 마씨(马氏)가 세상을 뜨자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마황후의 시호(谥号)가 '효자(孝紫)'인 까닭에 예전에는 이곳을 그냥 '효릉(孝陵)'이라 불렀다.

지금 이곳이 명효릉(明孝陵)이라 불리는 까닭은 단지 예전의 호칭인'효릉(孝陵)'앞에 명나라의 명(明)을 붙였기 때문이다.

문무방문 앞에 놓여있는 ▲ 문무방문 앞에 놓여있는 "특별고시(特别告示)"비(碑). 청나라 함풍원년(1909년) 정부에서 명효릉을 보호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모두 일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로 6개의 언어로 되어있다.

홍무(洪武)31년(1398년), 주원장이 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마황후와 지하궁전에 합장(合葬)되었으며

명나라 영락(永乐)11년(1413년)에 '대명효릉신공성덕비(大明孝陵神功圣德碑)'가 세워지면서 효릉(孝陵)이 완전히 건설되었다.

이렇게 30여년의 세월동안 만들어진 황궁은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큰 황릉(皇陵)중 하나이며 지금까지 600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 명효릉(明孝陵)의 비전(碑殿▲ 명효릉(明孝陵)의 비전(碑殿) 1699년 강희(康熙)황제가 시찰왔을 때 명효릉이 회손된 모습을 보고 이곳을 보수하라는 명령을 내리며 함께 지은 건물이다.

명효릉을 배우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끝머리에 있는 명루(明楼)까지 거이 도착했다.

▲ 내홍문(内红门)▲ 내홍문(内红门)

벌써 명효릉으로 통하는 내홍문(内红门)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지하궁전으로 통하는 명루(明楼)의 앞으로 도착하게 된다.

2003년 7월 명효릉은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명효릉이 세계유산에 지정된 이유는 한 가지만이 아닐테지만, '산을 통째로 빌려 릉을 만든(依山为陵)'만큼의 거대함이 한 몫 하지 않았을까?

 

▲ 명루(明楼)

명루는 명효릉이 처음 개척한 건축형식이다. 성벽위에 건축되으며 명효릉의 건축물 중 가장 높은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청나라 함풍년시기 지붕이 회손되어 2008년에 다시 보수되었다.

▲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듯한 착각을 주는 명효릉(明孝陵)의 명루(明楼)로 가는 계단.

명루에 오르려면 먼저 명루로 통하는 성벽의 문을 통해야 한다.

습기가 많아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조심 주의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명루에 올라 밖을 내려다 본다.

시간을 거슬러 명나라 시대로 온 착각이 들게 하는 이곳.

지붕은 옛모습 그대로 보수했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오래된 느낌은 없었다.

명루 안에는 기념품 판매상이 있고 벽에는 명나라와 명릉(明陵)에 관한 역사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 지하 궁전이 묻혀있을 보정(宝顶) (올라가는 길)

명루를 빠져나와 지하궁전이 있는 산봉우리 위로 올라가 본다.

뭔가가 있을 줄 알고 끝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계단과 나무외엔 아무것도 없다.

▲ 지하 궁전이 묻혀있을 산봉우리 (내려가는 길)

명효릉은 피라미드처럼 도굴꾼으로부터 파해침을 피하기 위해 지하궁전이 건설됨과 즉시 입구를 막아버렸다고 한다.

이미 명효릉의 지하궁전이 도굴꾼에의해 파혜쳣다는 설이 있으나 아직 진실을 알 방법이 없다.

현재의 명효릉은 많은 곳이 복원되었다. 그렇다면 언제 명효릉이 가장 큰 회손을 입었을까?

명효릉은 1853년 청나라와의 군대와 홍석전(洪秀全)의 태평천국군의 전쟁을 벌일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듯한 착각을 주는 명효릉(明孝陵)의 명루(明楼)로 가는 계단.

명효릉을 다 구경하고 이제는 남경의 부자묘로 가기위해 명루를 빠져나온다.

▲ 영성문(棂星门) 영성문은 용봉문(龙凤门)이라고도 한다. 효릉(孝陵)의 신도(神道)위에 있으며 중요한 예의성(격식을 따르기 위한) 건축물이다.

버스를 타려면 명효릉의 신도(神道)를 따라 나가면 되는데 이곳 또한 명효릉의 명소로 유명하다.

▲ 신도(神道)

신도의 양 갈래에는 문관과 무관, 사자와 해태, 낙타, 코끼리, 기린(전설의 동물), 말의 형상을 한 돌상이 있는데

이는 명효릉의 숭고, 성결, 화려함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명효릉을 보호하는 역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신도(神道)

신도를 나올 무렵 하늘이 금세 어두워지고 공기가 한층 무거워 졌다.

부자묘(夫子庙)에 가려면 버스에 타려고 하는데 금세 비가 폭포처럼 쏟아지려고 한다.

오늘 내내 습하긴 했지만 비가 올 것 같진 않았다.

"갑자기 왠 비가 내리는거야?"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무작정 버스정류장에 오늘 첫 번째 버스에 탑승 했다.

부자묘(夫子庙)에 가는 것 보다 우선 비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소나기였는지 버스가 거이 종점에 도착할 무렵... 비가 약해졌다.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부자묘에서 가장 가까운곳에 내려 택시를 잡아 이동했다.

2. 부자묘(夫子庙)

2. 부자묘(夫子庙)▲ 부자묘(夫子庙)가 있는 거리로 들어가는 정문

비가와서 이미 양말 속은 다 젓어버렸다.

주변 상점을 찾아 크럭스 짝퉁 슬리퍼를 20원에 사고 원래 신발은 쓰래기통에 버렸다.

 오래된 신발을 신고와서 다행이다.

 부자묘(夫子庙)▲ 아직은 비가 내리고 있는 남경시

 부자묘(夫子庙)

부자묘는 중국 유교사상의 창시자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현지인들은 공묘(孔庙)라고도 하며, 송(宋) 왕조 때 세워졌고, 친화이허(秦淮河) 북쪽 연안에 자리하고 있다.

남경의 부자묘는 북경의 왕부정(王府井)의 옛 거리나 상해의 예원(豫园)과 비슷한 곳처럼 보인다.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뭐니뭐니해도 맛있는 샤오츠(小吃 간식)를 파는 미식거리(美食街)가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남경의 샤오츠 중에 가장 유명한 요리는 오리선지당면탕(鸭血粉丝汤)인데, 

오리선지당면탕을 주 메뉴로 파는 페스트푸드점도 있을 정도다. (회미'回味'라는 곳이다.)

(나는 페스트푸드점의 정형화된 오리선지당면탕보다 좀 더 정통적인 맛을 느끼고 싶어 부자묘에 있는 사람이 많이 몰린 식당에 들어갔다.) 

 부자묘(夫子庙)▲ 오리선지당면탕(鸭血粉丝汤)을 팔던 부자묘에 위치한 식당의 간판

▲ 오리선지당면탕(鸭血粉丝汤) 한 그릇에 5원▲ 오리선지당면탕(鸭血粉丝汤) 한 그릇에 5원

마라탕(麻辣烫)과 비슷한 맛이 느껴지는 국물에 유부, 선지, 당면 등이 들어있다.

평소 선지를 좋아하지 않지만, 얼큰한 국물 때문인지 부드럽고 말캉 말캉하게 씹히는 식감이 너무 좋았다.

▲ 오리기름으로 만든 샤오빙(鸭油烧饼)▲ 오리기름으로 만든 샤오빙(鸭油烧饼) 개당 2원

오리선지당면탕과 함께 오리기름으로 만든 샤오빙(鸭油烧饼)을 파는데,

단맛 짠맛이 있고 그 맛은 특히 색다르거나 이상하지 않고 그냥 일반적인 샤오빙(烧饼 구운 과자)을 먹는 듯하다.

▲ 함향주점(咸亨酒店) 부자묘(夫子庙)로 가는 길목 친화이허(秦淮河)를 건너는 다리 옆에 있는 간식거리 판매점)

남경 부자묘엔 남경의 간식거리만 파는것이 아니다. 중국 여러 곳의 밍츠(名吃:이름 난 음식)를 파는 가개가 많이 있다.

내가 갔을 때 함향주점(咸亨酒店)의 음식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는데,

이 함향주점의 본가(本家)는 주향(酒乡)이라고 불리는 절강성 소흥(绍兴)에 청나라 광서 갑오년(光绪甲午年 1894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 함향주점(咸亨酒店)에 취두부(臭豆腐), 회향두(茴香豆)등 샤오츠(小吃 간식)을 팔고 있던 주방장

▲ 함향주점(咸亨酒店)에 취두부(臭豆腐) 한 접시에 8원

어느정도 발효된 두부를 뜨거운 기름에 튀겨주는 이 취두부는 지독한 냄세로 사람들의 얼굴을 찌뿌리게 하는 요리다.

그러나 그 맛은 깊고 먹으면 먹을 수록 생각나게 하는 오묘한 마력이 있어 중국 전역에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 청국장이 있다면, 중국에는 취두부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지방마다 그 맛과 향의 세기는 각각 다르다.

 중국에서 운남(云南), 북경(北京), 길림(吉林)에 살면서 취두부를 모두 맛보았지만,

악취가 별로 없지만 깊은 맛을 내던 함향주점에서 팔던 취두부의 맛이 제일 좋았다.

▲ 인력거에 앉아 돈을 지불하면 부자묘의 거리들을 돌며 재미있는 역사지식을 알려준다.

▲ 부자묘(夫子庙)의 입장권 판매소. 푯값 : 성인 40원

거리를 돌며 샤오츠들을 먹다보니 어느새 친화이하(秦淮河)의 옆에 있는 부자묘(夫子庙)에 도착했다.

소화도 시킬겸 입장권을 구매해 부자묘로 들어가 보았다.

공자에게 제사를 지네는 부자묘의 안에는 역시 불교나 도교사원가는 사뭇 다릇 느낌이 느껴진다.

불상(佛像)대신 공자상(孔子像)이,도교(道教)의 도사들대신 유교(儒教)사상을 믿는 사람들이 공자묘에 가득했다.

▲ 부자묘(夫子庙) 정문

▲ 부자묘(夫子庙)안에 있는 공자상(孔子像)

▲ 부자묘(夫子庙)의 주전(主殿) 대성전(大成殿)의 내부. 이곳에서 공자에게 제사를 지낸다.

▲ 부자묘(夫子庙) 종루(钟楼)

오늘 아침부터 시작해 남경의 총독부, 남경시 도서관, 쯔진산(紫金山)의 중산릉(中山陵), 영곡사(灵谷寺), 명효릉(明孝陵)을 다 가보고

이렇게 부자묘(夫子庙)의 미식거리, 공자에게 제사르 지내는 곳인 부자묘(夫子庙)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오늘 밤 남경을 떠나 안휘성(安徽省)의 마안산(马鞍山)으로 가기 전 발달한 남경의 모습을 보러 시내 구경을 하려고 한다.

 

7대 고도(古都)의 남경, 그곳의 밤거리는 어떤 모습일까? 다음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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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vicon of http://blog.naver.com/wungcity BlogIcon gg 2012.09.07 22:27 신고 URL EDIT REPLY
ㅎㅎ
명루 위의 건축물은 제가 난징에 갔었던 2008년에만 해도 방성만 있었는데, 작년에 블로그 작성하면서 자료를 찾다보니 건물을 세웠더군요.
명루를 복원한지 겨우 2,3년 밖에 안됐으니 오래된 맛은 없었겠죠.
Favicon of http://zjlibrary.tistory.com BlogIcon 박진심 | 2012.09.07 22:37 신고 URL EDIT
네 2008년에 재건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없는 것 보단 차라리 있는편이 좋은것 같아요. 원래의 것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말이에요. 이렇게 블로그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blog.naver.com/ilovesansuin BlogIcon 중국에세이 2012.09.08 00:01 신고 URL EDIT REPLY
복원하기 전엔 진짜 아무것도 없었는데... 전 1997년경 가본 것 같네요.
Favicon of http://zjlibrary.tistory.com BlogIcon 박진심 | 2012.09.08 00:25 신고 URL EDIT
1997년 이면 제가.. 유치원다니고 있을때군요...ㄷㄷㄷ
도초 2012.09.08 03:05 신고 URL EDIT REPLY
더위에 여행하느라 온 몸이 땀 범벅이었을텐데 거기다 비까지 맞았으니 얼마나 찜짬했을까? 그래도 다행히 신발을 벋어던지고 슬리퍼로 갈아신었다니 그나마 시원했겠습니다.나중에 좋은 추억으로 남겠늡니다.
Favicon of http://zjlibrary.tistory.com BlogIcon 박진심 | 2012.09.08 03:18 신고 URL EDIT
내!! ㅋㅋ 그 예전에 산 빨간 줄이 있는 흰색 커다란 운동화 였습니다... 신발 하나 새로 사야합니다.ㅜ .ㅜ
drummer 박 2012.09.08 09:12 신고 URL EDIT REPLY
이곳 여행지는 비교적 한산 합니다. 거리도 깨끗해 보이구...
소나기를 만나서 난감했겠습니다.
Favicon of http://zjlibrary.tistory.com BlogIcon 박진심 | 2012.09.08 12:21 신고 URL EDIT
네 비교적 한산합니다. 아무래도 이곳의 핫 플레이스는 중산릉(쑨원의 묘)였어요. 사람이 제일 많았죠. 그렇지만 명효릉이 영곡사보단 찾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중산릉>명효릉>영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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