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정복여행기/강소, 절강, 안휘, 강서, 산동, 상해

중산릉(中山陵) - 천화위공(天下为公) 중국의 국부(国父) 손중산의 묘를 찾아가다! (강소성 2-3)

※ 천하위공의 뜻 : ▲ 자금산(紫金山 쯔진산)위 중상릉에 올라서

중산릉(中山陵) - 천화위공(天下为公) 중국의 국부(国父) 손중산의 묘를 찾아가다! (강소성 2-3)

천하위공의 뜻 : "온 세상은 국민이 공유하는 것이다."

▲ 중산릉으로 가는 9번 버스 안에서. 뒤에 있는 건물은 남경은행이다.▲ 중산릉으로 가는 9번 버스 안에서. 뒤에 있는 건물은 남경은행이다.

남경시 도서관을 구경하고 무작정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을 찾아 중산릉으로 가는 버스 9번에 탑승했다. (버스비 1원)

10분 쯤이 지났을까? 중산릉 버스정류장에 도착했고 사람들이 이동하는곳을 따라 가니 중산릉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이제야 드는 생각. 무작정 계획없이 중산릉먼저 찾아가서 고생을 했다. 이리갔다 저리갔다 시간과 돈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주변 명소를 다 보려면 명효릉(明孝陵), 중산릉(中山陵), 영곡사(灵谷寺) 순으로 이동해야 시간낭비 돈낭비를 안한다.   

중산릉에 오르면 관광차가 보인다. 5원을 주고 중산릉 입구까지 대려다 주는 편도선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중산릉입구까지 그리 먼거리는 아니지만,

 다시 입구에서 중산릉 위로 오르려면 어느정도 걸어야 하기 때문에 편한 여행을 원한다면 차를 타는것이 이득이다.

▲ 중산릉으로 가는 도보. 옆에는 관광차만 다니는 길이 따로 있었다.▲ 중산릉으로 가는 도보. 옆에는 관광차만 다니는 길이 따로 있었다.

나도 주변 가이드의 말을 듣고 차를 탈까 살짝 고민했지만,

이제 본격적인 여행시작, 그냥 걸어 올라가는 사람도 적지 않아 보여서 나도 그들을 따라서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5분정도를 더 걸으니 긴 도로가 나왔다.

아직은 좀 더 걸어야 하나보다.

▲ 8원에 팔고 있는 부채. 손중산의 초상화와 중산릉의 그림이 새겨져있다.▲ 8원에 팔고 있는 부채. 손중산의 초상화와 중산릉의 그림이 새겨져있다.

위의 표지판을 걸어 문을 통과하면 곧이어 중산릉으로 가기 전 보이는 각종 기념품점이 있다.

난징은 우한(武漢)·충칭(重慶)·난창(南昌)과 함께 가장 무더운 4대 화로도시 중 하나다.

8월 21일인데도 불구하고 남경은 마치 한 여름처럼 습하고도 더웠다.

8원애 하나씩 파는 부채를 들고다니면서 더위나 시킬겸 손중산의 얼굴이 크게 새겨져있는 놈으로 하나 구매했다.

▲ 천하위공 "온 세상은 일반 국민이 공유하는 것이다." 라는 뜻과 함께 손중산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부채.

그리고 바로 중산릉으로 가는 입구 옆에서 만난 기념동전 뽑기 기계! (1개 3원) 걸어가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기념품이었다.

직접 원하는 그림을 골르면 핸드폰 악세사리로도 쓸수 있는 기념동전이 나오는 건데, 중국사람들에게 인기 있어 나도 약간 줄을 섰다.

바로 도장이 찍혀나와서 그런지 직접 만드는 느낌이랄까?

동전을 바로 꺼내면 지금막 배달된 음식처럼 따끈따근한게 신기하다. 

천화위공(天下为公) 중국의 국부(国父) 손중산의 묘를 찾아가다!▲ 앞 천화위공(天下为公) 중국의 국부(国父) 손중산의 묘를 찾아가다!▲ 뒤

동전을 뽑으면 옆에서 바로 구멍을 뚫어 핸드폰 악세사리로 쓸 수 있게 줄을 달아준다.

빨간 줄 때문인지 악세사리의 느낌이 매우 중국스러웠다.

천화위공(天下为公) 중국의 국부(国父) 손중산의 묘를 찾아가다!▲ 중산릉의 입구.

중산릉의 입구에 도착. 나는 당연히 표를 사야하는 줄 알았다. 그런대 왠걸!

중산릉은 특별히 관광객들이 무료로 참관할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

이렇게 고마울수가! 중국의 관광지는 문표가 비싸서 부담이 많이 되는데, 중산릉의 입장료가 꽁자라 다행이다.

북경의 마오쩌뚱 기념관도 (마오쩌뚱의 보관처리된 시체가 있는 곳) 무료로 참관할 수 있던데,

비슷한 이유로 이곳도 입장료를 받지 않나 보다.

▲ 중산릉 옆 식품매대. ▲수박맛 슬러쉬. 달콤한 맛을 잊을 수 없다.

으아!~ 날씨가 너무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8월이라 다행이지 한 여름이었으면 어쩔뻔 했는가!

중산릉에 본격적으로 올라가기전 수박맛 슬러쉬를 팔길래(5원) 하나 사먹었다.

▲ 중산릉의 묘역을 알리는 패방(牌坊)

드디어 중산릉앞에 섰다. 패방 가운데 희미하게 보이는 중산릉이 보인다.

패방(牌坊)은 이곳이 손중산의 묘지임을 알리는 건물인데 위에는 박애(博爱)라고 씌여있어 '박애방'이라고도 불린다.

'박애'는 손중산의 중화민국의 국민만을 생각했던 그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다.

박애방을 넘으면 마치 북경에 있는 천단공원(天坛公园)에 온 것처럼 긴 길이375m, 넓이40m의 묘도(庙道)가 나오는데,

양 갈래에 울창하게 자라난 송백나무가 인상깊다.

▲ 중산릉의 정문 '능문(陵門)'▲ 중산릉의 정문 '능문(陵門)'

▲ 천하위공의 뜻 : ▲ 천하위공의 뜻 : "온 세상은 국민이 공유하는 것이다."

손중산의 묘로 통하는 정문앞에 도착했다.

하늘색 기와의 웅장한 '능문(陵门)'의 모습을 살펴보니 '천하위공(天下为公)'이라는 손중산의 친필 휘호가 걸려있다.

파란색 기와는 창천(苍天)을 의미하며, 천하위공은 "온 세상은 국민이 공유하는 것이다."라는 손문의 가장 주요한 사상이다.

▲중산릉의 비정(碑亭)▲ 중산릉의 비정(碑亭)

 정문을 통과해 좀 더 올라가자 비정(碑亭)앞에 도착했다.

비정(碑亭)은 넓이12m 높이17m의 건물로 안에는 9m의 비석이 놓여져 있다.

비석에는 당시 국민정부의 주석, 행정원장, 국민당내 4대 서예가인  담연개(谭延闿)의 글씨로

"중국국민당의 총리 손선생이 이곳에 묻히다. 중화민국 18년 6월 1일"이라고 적혀있다.

(※ 당시 손중산은 청제(清帝)의 폐위를 조건으로 대통령직을 퇴임하고 원새개(袁世凯)에게 대통령직을 맡겼다.

그래서 국민당총리라는 이름으로 장례를 치르게 된 것이다.)

▲ 중산릉으로 올라가는 계단. 개단의 수는 모두 393개다.

이제는 저 높은 화강암 계단을 걸어 올라갈 차례!

더운 날씨 여기까지 걷느것도 힘든데 급기야 계단까지 올라가야 하다니...

에이! 어차피 힘들꺼 한 번에 힘들고 싶다.

다다닷!! 손살같이 뛰어서 계단을 올라간다. 

▲ 봉안기념동정(奉安纪念铜鼎)▲ 봉안기념동정(奉安纪念铜鼎) 1929년 민국상해특별시정부에서 손중산 선생님 시신 매장을 기념하기 위하여 증정한것이다.

커다란 솥이 있는 곳 (중간 지점)에서 잠깐 멈춰 숨을 고른다.

"허억!~ 허~억!"

▲ 봉안기념동정(奉安纪念铜鼎)▲ 정높이는 1.5m 직경이 1.3m인데 정외각에는 "봉안대전"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1937년 12월 일본군이 남겨놓은 폭격자국이 남아있다.

▲ 계단 위 세 개의 문이 있는 제당(祭堂)▲ 계단 위 세 개의 문이 있는 제당(祭堂)

다시 계단을 뛰어올라 제당앞에 섰다. 제당을 관찰해보니 역시 파란기와에 황금색 글씨가 여럿 현액돼 있다.

먼저 세개의 문 위에 각각 삼민주의의 민족·민생·민권이 적혀있고 그 위에 중앙에는 세로로 ‘천하정기(天下正氣)’라고 적혀 있었다.

민족·민생·민권은 국민당의 원로인 장정강(张静江)이 적은것이고 천하정기는 손문의 친필이라고 한다.

▲ 자금산(紫金山 쯔진산)위 중상릉에 올라서▲ 자금산(紫金山 쯔진산)위 중상릉에 올라서

이야~! 비록 다리는 아프고 숨은 가쁘지만 경치하나는 끝내준다.

순종산의 서거 당시 기사를 보면 그의 병상에서 사람들이 장지를 의논할 때 그가 스스로 ‘자금산(紫金山 쯔진산)’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석양이 질 무렵 자색 기운이 산을 맴돈다하여 이름 붙여진 자금산, 그리고 그 위 손중산의 마음의 창천(苍天)의 푸른 기운이 합쳐지는 이 곳.

손중산의 묘가 있음으로써 자금산은 음과 양의 조화가 있는 아름다운 장소가 된 것같다.

▲ 제당(祭堂)안 손중산의 동상.▲ 제당(祭堂)안 손중산의 동상. 제당안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있다.

제당으로 들어가려면 오른쪽에 따로 마련된 통로를 거쳐 들어가야 한다.

안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며 절대 정숙을 원칙으로 한다. (사진은 제단 밖에서 촬영했다.)

가운데엔 대리석으로 만든 손중산의 좌상(坐像)이 있고 제당 안 동과 서쪽 벽에있는 대리석엔

손중산이 남긴 유저(遗著)'건국대강(建国大纲)’과 후한민(胡汉明)이 적은 '총리유언(总理遗嘱)'글이 적혀있다.

▲ 제당(祭堂)안 천장의 모습. 국민당의 국기였던 백일청천기(白日青天旗)

천장에는 국민당의 국기인 백일청천기(白日青天旗)가 보이는데

청색은 광명순결과 민족자유를 의미하고 흰색은 깨끗하고(坦白) 공평함을 의미한다.

아쉽지만 손중산의 묘실과 그 안 손중산의 와상(卧像:누워있는 동상)은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었다.

 대신 제단바로 옆 2원을 지불하고 3D사진으로 그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손중산(孙中山) 그는 죽으면서 어떤 유언을 남겼을까?

 1925년 3월 12일 9시 30분, 손중산은 담관선의 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북경협화의원(北京协和医院)에서 향년59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는 죽으면서 : "화평(和平)……분투(奋斗) 구(救:구하다.)중국!"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죽으면서까지 나라를 생각한 그의 위대한 정신에 감탄과 경의를 표한다.

 

손중산이 죽은 후 북경에는 74만명의 조문객이 사인을하고 30여만명이 영빈식에 참가했다고 한다.

지금도 손중산을 찾는 관광객이 몇만명을 넘어가는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하는데 오늘은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상상해본다. 자신은 죽으면서 어떤 유언을 남기게 될까?

 


박진심의 중국여행 정복기 朴心的中旅游征服

박진심의 중국여행 정복기 프롤로그, 모든 글 보기(하단 위치)


간쑤·광둥·구이저우·랴오닝·산둥·산시
[山西]·산시[陝西]·쓰촨·안후이·윈난·장시·장쑤·저장·지린·칭하이·푸젠·하이난·허난·허베이·헤이룽장·후난·후베이·타이완 등 23개 성()과 광시장족·네이멍구·닝샤후이족·시짱(티베트)·신장웨이우얼 등 5개 자치구(自治區), 베이징·상하이·충칭·톈진 등 4개 직할시(直轄市), 마카오·홍콩 등 2개 특별행정구(特別行政區)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 청화대학 중어중문과09학번
대표블로그 :
http://zjlibrary.tistory.com/ (도서,여행관련)
중국판 블로그 :
http://blog.sina.com.cn/woxihuanzhongguo (중한문화관련)
카카오톡 : pokerup5
메일 :pokerup5@gmail.com/@126.com/naver.co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