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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복여행기/하남, 호북 호남성

하남성 여행! 숭산(嵩山)에서 꼭 봐야 할 중국 4대 서원 숭양서원(嵩阳书院)/대웅보전(大雄宝殿) (하남성 2-1호)

 

하남성 여행! 숭산(嵩山)에서 꼭 봐야 할 중국 4대 서원 숭양서원(嵩阳书院)/대웅보전(大雄宝殿) (하남성 2-1호)

1. 낙양(洛阳)에서 숭산(嵩山)으로 출발.

아침 7시 카운터에 깨워 달라는 부탁을 해서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침대에서 자서 생각보다 개운한 느낌이다.

 

모든 짐과 함께 어제 산 비상(非常)콜라와 낙양의 특산품 모란빵(牡丹饼)도 챙겨 넣었다.

낙양(洛阳)의 기차역 주변에는 장거리 버스 터미널이 여러개 있는데

그 중 가장 가까운 버스터미널에서 18원을 주고 송산 소림사(嵩山少林寺)로 가는 버스를 타게되었다.

(※첫 버스는 7시 50분에 있습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있는 버스는 오전에만 출발합니다. 정주(郑州)도 비슷할 겁니다.)

버스에 타보니 어느 아저씨가 가이드를 찾으라고 한다.

가이드를 찾으면 혼자 돌아다닐 필요 없이 여러곳을 쉽게 움직일 수 있다면서 말이다.

나는 학생적용이 안될거라고 생각하고 안하려고 하고있는데 학생할인이 되고

10원만 더 주면 된다고하니 믿고 신청하게 되었다.

(이제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가이드를 구해 여러곳을 쉽고 재미있고 싸게 다닌것 같다.)

2. 고대 중국의 칭화대학 - 숭상서원(嵩阳书院) 

1시간 쯤 달렸을까?

8시가 넘어 유네스코 지정문화제 숭양서원(嵩阳书院)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숭산 풍경구의 통일 입장표 (100원, 학생 50원)

소림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적지를 이 표 한장으로 입장가능하다.

단, 유적지 사이의 거리가 멀어 다니기 힘드니 여행사를 따라 가거나 자신의 차가 있어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열심히 우리들을 대리고 설명해주시던 가이드 아줌마.

하남 숭산(河南嵩山)의 숭양서원(嵩陽書院)은 호남(湖南) 악록서원(岳麓書院),

강서(江西)의 백로주서원(白鷺州書院), 하남(河南)의 수양서원(睢陽書院)과 함께 중국 4대서원(中國四大書院) 중 하나라고 설명해 주셨다.

숭양서원(嵩阳书院)은 지금으로 치면 중국의 칭화대, 북경대라고 비유하신 가이드의 말.

현재 칭화대에 재학중인 나로써 고대의 칭화대 숭양서원(嵩阳书院)까지 오게되다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숭양서원에서 만난 아주 귀여운 어린이~ 예전 과거급제를 하면 지나간다는 장원교(状元桥)위에서 물고기들을 구경하고 있다.)

자유시간에 가이드와 함께 가지 않은곳을 들어와보니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소림사(少林寺)사진도 보고

중국 5대 명산의 중심 숭산(嵩山)의 아름다운 자태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 날씨가 흐려 지금 내가 있는 숭산의 모습을 잘 보지 못했었는대 사진으로나마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고대의 칭화대는 어떤 사람들을 배출했을까?

송나라 평화로운 시절, 유(儒)학생들은 5대의 걸친 난세를 지나온 까닭에

모두 숭양서원이 있는 곳처럼 산속에 모여 공부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는 범중엄(范仲淹 북송의 정치가),

자치통감(资治通鉴)의 편찬자 사마광(司马光 자치통감을 바로 이곳 숭양서원에서 만들었다.),

주희(朱熹 남송의 유학자 대학, 중용, 맹자,논어를 4대 유학서로 묶은 사람)등이 24명의 역사적 인물이 있다.

위의 사진이 바로 사마광이 자치통감(资治通鉴) 제9권부터 제21권을 작성한 숭복궁(宋福宫)의 건물이다.

3. 숭양서원(嵩阳书院)의 재미있는 측백나무 이야기!

숭양서원에는 세그루의 측백나무이야기가 있다.

한무제(汉武帝)는 숭양서원에 오게되었고 첫 번째 문에 들어서자 바로 위의 측백나무를 보고 이런말을 했다.

"내가 천하를 두루 다녔지만 이렇게 큰 나무를 본적이 없다. 이 나무를 제1장군이라고 칭하노라."

한무제는 그렇게 2번째 문으로 들어섰고 불과 몃걸음 가지 않아 첫번째 측백나무보다 더 큰 나무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건 제2장군이다." (황제의 말은 쉽게 바꾸면 안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발언이었다.)

한무제는 다시 걸어 3번째 문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첫 번째, 두 번째 나무보다 더 큰 측백나무가 서있는것이었다.

신하들은 이 나무가 제일 큰데 어떻게 하느냐고 한무제에게 물었다.

그러나 한무제는 말하길 "크고 작은게 뭐가 중요하느뇨? 먼저 들어온것이 왕이다."

그래서일까? 한무제가 숭양서원을 다녀온 이후

첫 번째 나무는 고개를 떨군 모습을 하고

두 번째 나무는 화가나 배가 터져 뿌리위가 벌어졌다.

마지막 나무는 한무제의 말을 듣고 화가나 죽어버렸다고 한다.

그랬구나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더!

위의 사진에서 미륵보살을 찾아보시라!

 바로 나무 사이에 보이는 나무줄기가 미륵보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측백나무는 4500년동안 오래 산 중국의 가장 오래된 측백나무다. 앞으로 1000년은 더 산다고 하니...

정말 살아있는 미륵보살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숭양서원에서 보고 가야할 것!

바로 숭양의 비석왕이라고 부르는 - 대당비이다.

전 이름은 대당숭양관기성덕성응이송비(大唐嵩阳观纪圣德盛应以颂碑)로 당나라 천보3년(天宝三年 공원744년)에 세워졌다.

비석의 높이는 9.02미터, 넓이 2. 04미터, 두께 1.05미터로 엄청나게 크다.

또 숭양서원의 도사 순태충의 이야기가 적혀있는 섬세하고 정갈한 1078자의 아름다운다운 글자로 유명하다.

어떻게 그 옜날 비석위에 저렇게 큰 모자를 씌웠을까? 이에 대하여 아직도 많은 의문이 있다고 한다.

4. 숭산 대웅보전 (嵩山 大雄宝殿)

이곳은 숭산에서 가장 오래된 절 대웅보전의 조벽(照壁) 앞이다.

천중산(天中山)이라는 3글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데 그 중 가장 큰 뜻은 이곳이 바로 천하의 가운데라는 것이다.

하남성은 예로부터 중원(中原)의 발생지라고 부르며 언제나 중국의 중심지였다.

 

재미있는것은 하남성의 사투리 중불중中不中(좋은가 안좋은가(行不行)의 뜻을 가지고 있다.)도

하남이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사투리라고 한다.

대웅보전에 들어가보면~

나사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대웅보전이 지어진것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

가이드는 이 절이 예로부터 중국 불교역사의 중심이자 성지이며

많은 목재를 사용하지 않고 지어진 과학적 건물임을 알려주었다.

대웅보전 또한 유네스코에 지정될 만큼 중요한 유적지이다.

숭산을 여행하는 사람 중 대게 소림사(少林寺)만 다녀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왕 숭산에 온거 꼭 숭양서원과 함께 대웅보전에 다녀오길 추천한다.

 

소림사에 가기 전 근처 농가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비는 각자 부담하는건데 간단히 계란 볶음밥을 10원주고 먹었다.

비싼편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맛은 좋았다. 다음은 오늘 여행의 하이라아트 소림사(少林寺)를 갈 차례이다.

Bye

다음 호는 숭산의 보석 - 소림사(少林寺)를 포스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