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공산당 오피스 주공관과 주은래 (상해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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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공산당 오피스 주공관과 주은래 (상해 3호)

주공관 왜 주공관일까?

상해의 주공관이라고 들어보았는가?

3층의 푸른 집 주공관, 이곳은 바로 1946년 6월 세워진 중국 공산당대표단의 오피스이다.

중국 공산단의 오피스인대 왜 주공관이라고 불릴까? 여기에 대해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1946년 중국공산당 대표단은 이곳의 방을 빌렸다.

당시 공산당은 장개석 정부의 견재를 받고 있었고 중국공산당원들은 이 사무소를 상해에 열고 싶었지만

국민당원들은 당연히 반대.

6월 18일 남경에서 상해로온 동필무(동비우)는 과감히 결정하며 말하였다.

"오피스를 세우지 말라, 그냥 주공관이라 부르자." 

주공관의 내부 (이곳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제대로된 사진을 찍지 못하였다.)

주공관의 역사

이 서양식의 건축물은 원래 프랑스 상인의 소유였다.

하나의 3층과 하나의 지하실이 있는 이 건물은 그윽한 분위기를 풍겨 좋은 느낌을 풍긴다.

녹색 잔디가 중앙에 있고 한그루의 무성한 나무가지가 건물을 감싸고 있다.

이곳에서 주은래(조은라이)는 미국의 대통령 특사 George Catlett Marshall 마샬장군과

국민당정부 대표 사오리즈(邵力子) 우티에청(吴铁城) 그리고 제3방면 대표 션쥔루 황옌페이(沈钧儒黄炎培)등과 만남 가졌다.

그리고 중국과 외국의 기자를 모아 기자회견을 하는 등 당시 공산당의 핵심적 건물이었다.

1946년 7월 17일 주은래는 여기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100명의 넘는 기자들이 이 작은 곳에 와 건물 밖이나 건물의 창 밖 베란다에서

모두모여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얼마되지 않아 중국 공산당중앙의 지시하에 중국공산당 대표단은 연안으로 철회하기로 하고 자연스레

주공관은 "민주동맹"(국민당)에 속하여 보관되었다.

그리고 이 건물은 국민당 상해정부의 불법 관리를 받게 되어 원래 있던 건물들이 전부 유실 되었다.

1949년 신중국 성립 후 원래있던 기념관에 주은래, 동필무의 침실 등 부분적으로 수리 회복이 되어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고,

그 때의 역사를 진열함으로서 여행자들에게 공개 전시되어 있다.

1959년 상해시 문물보호 단위로 지정되었으나 아쉽게도 이곳에 있는 대다수 가구들은 복제품이다. 

주공관의 침실

주은래 (조은라이) 그는 누구일까?

위의 내용에서 주공관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주공관의 이름의 주인공 주은래.

중국에서 모택동을 욕하는 중국인은 있어도 주은래를 욕하는 중국인은 없다. 그 만큼 인민들과 친했던 그 주은래는 누구 일까?

1898년~1976년 자는 翔宇항우 강소성 화이안淮安 태생이다.

중국 무산계급의 혁명가이자 정치가이자 군사, 외교가이며 중국 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요 지도자,

중국인민해방군의 설립자 중 한명. 

1917년 천진 남개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에서 유학. 1919년 중국에 돌아와 54운동 중 천진에서 결우사觉悟社를 만들고

반 제국 반 봉건운동에 참여하다 투옥되어 학교에서 퇴학하게 된다.

1920년 프랑스에 건너가 정치학을 전공하게 되고 유럽 중국 소년공산당을 만든다.

1921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고 청년단 유럽지부와 중국 유럽지부의 리더가 되었고,

1924년 다시 중국에 돌아오고 3년 후 1927년 8월 1일 남창봉기를 주도하였다.

1948년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게 된 후 계속 정부의 총리를 맡아 일하였으며 외교부장과 중국공산당중앙군위원회의 주석,

전국 정치협회의 부주석과 주석을 함께 겸임한 적이 있었다.

중국 제5회, 제6회 중앙정치국위원과 제7회 중앙정치국 위원과 서기, 제9회 중앙정치국 위원, 제8회 제10회 중앙위원 부주석을 겸임하였다.

이런 그의 이력으로는 주은래를 기억하는데 도움이 안된다. 그렇담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는 무었이 있을까?

 한국인들의 관심을 끄는 주은래의 이야기

주은래의 대한 이야기는 많이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의 그의 근면한 생활이 소개될 정도로 주은래는 아직 중국인들의

모범이며, 대표적인 정치가다. 아마 그 이유는 모택동의 뒤에서 누구 보다도 근면하고 성실하게 나랏일을 했음이라.

특히, 모택동이나 다른 정치가들 처럼 많은 일을 했음에도 큰 과오가 없은 점도 인기 비결.

그건 그렇다고 치고 한국인과는 관련 없다며  주은래에 대해 관심없을 수 있으니, 여기서 관련된 이야기 몃가지 소개한다.

하나. 주은래는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고 한다.

(대체로 중국인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없거나,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양심없는 정치가들의 말에 중국의 역사인 줄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주은래는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라고 하는 이들에 반대편에 서 양심있는 정치가가 되었다.

둘. 그의 재치. 어느 날 미국인 기자가 주은래에게 물었다고 한다.

"왜 서양인은 당당하게 고개를 새우고 다니는데 중국인은 머리를 숙이고 다니죠?"

이 때 주은래는 대답했다고 한다.

"중국인은 당연히 오르막길을 걷고 있으니 고개를 숙이고 다니고 서양인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니 고개를 세우고 다니죠."

마지막으로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천진시엔 주은래 기념관이 있는데

"중국인은 천진을 찾은 사람이 주은래 기념관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은래 기념관을 찾기 위해 천진을 찾는 것이다."

 

원래 이곳의 표 값은 3원 본래 비싼 표 값은 아니지만,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공짜로 표를 나눠주며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아마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주공관을 찾다 주은래 총리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은래 총리를 생각하며 주공관을 찾는 것이 아닐까?

 주은래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긴 당신 잠깐 이곳을 들려보는 것이 어떨까?

이곳 주공관에서 10분 정도 머물며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정치가이자 리더 주은래의 자취를 느껴보길 바란다.


주공관 周公馆 관람정보

개관시간 : 오전 9:00 - 오후 5:00 (오후 4:00 후 관람 불가. 365일 모두 개관)

주소 : 상해 사남로 73호 上海 思南路 73号

전화 : 64740420 우편번호 : 200025

홈페이지 : http://www.shcrm.com/SHCRM/zhonggong/default.htm

이메일 : yidahuizhi@sina.com

교통정보 : 버스 24번, 17번, 隧道八线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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