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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화 리뷰/2012년

사랑은 야채 같은 것 (24)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이만 먹었다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야채뿐인 식탁에 불만을 가졌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식탁엔 점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그는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 『사랑은 야채 같은 것』(민음사, 2003) -

 

시인은 자고로 예민해야.

시인은 자고로 예민해야 한다는데

어딘가 우수에 잠겨 있어야 한다는데

나는 어째서 통통하게 살이 찌고

나는 어쩌자고 우스갯소리만 해대는가

어쩌면 나는 시인이 아닐지도 몰라

거리에 지나다니는 행인 열 명 중

나보다 더 예민하고 나보다 더

시인 같은 이가 열한 명은 되는 것 같아

나보다는 봄날 아스팔트 틈에 피어난

제비꽃이 더 예민하고

우수에 잠겨 있는 것 같아

나보다는 쓰레기 분리수거에 열중하는

경비 아저씨가 더 예민하고

우수에 잠겨 있는 것 같아

나보다는 지금 내가 시를 쓰고 있는

0.3mm짜리 수성펜이 더 예민하고

우수에 잠겨 있는 것 같아

시인은 자고로 예민해야 한다는데

나는 왜 시 쓰는 데 예민하지 않고 시인되는 데 더 예민한 건지

나는 자꾸 불안해서

가끔 예민해지고 우수에 잠긴다

- 『사랑은 야채 같은 것』(민음사, 2003) -

감상

이런 시를 쓰는 시인 성미정 그녀는 진정 삶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어쩜 평평할 수 있는 우리의 삶 그 삶도 시가 될 수 있다는걸 난 시집 [사랑은 야채 같은 것]에서 보았다.

이 시집은 절대 사랑만 다룬 시집이 아니다.

또 절대 심오한 문제를 다루는 시집이 아니다.

단지 소소함을 시화시킨 아름다운 시집이다.

사랑은 야채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이라며 끝난다.

시인인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시인같지 않다고 왜냐 예민하지 않아서...
그러나 다시 안심한다. 시인같지 않다고 걱정하는 예민한 자신을 보면서.

이 시집이 좋은이유 바로 반전이 있어서! 그리고 친근해서.
푸른하늘 오월 시집 한 권 읽고 싶다면 성미정의 시집 『사랑은 야채 같은 것』은 어떨까?